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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 _김순애 작가

작성자 나레하
작성일 17-03-21 15:48 | 조회 4,8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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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겸손한 승리자"
_김순애 작가(푸네 CJ통운 이시호 법인장 부인) 201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수필부분 1위 당선



[나레하] 강희도 기자 = 지난 1월 11일 매일신문사가 주최한 2017년 제60회 매일신춘문예 시상식에서 푸네 주재 CJ 통운 이시호 법인장의 부인인 김순애 작가가 수필부문 1위를 수상하였다.

매일신문 신춘문예는 1953년부터 현재까지 60회동안 이어지고 있다. 소설가 김원일, 이문열을 필두로 시인 도광의, 안도현이 이 상으로 등단 했을 정도로 우리나라 최고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상이다.

3월 18일 푸네 한인회 총회에서 가진 인터뷰 자리에서 김순애 작가는 “글을 쓰면서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수상한 나침반이라는 글을 통해 푸네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남편을 더욱 사랑하고 응원하게 되었던 것처럼, 글은 제게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라며 글 쓰기의 아름다움 대한 자신의 생각과 그를 통해 느끼는 감사함에 대하여 전하였다. (자세한 인터뷰 내용은 곧 발간 예정인 나레하 18호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김순애 작가에게 신춘문예 1등 수상의 영예를 안겨준 ‘나침반’이라는 작품은 심사위원의 극찬을 받은 수작으로서 심사위원 홍억선, 정성화 수필가는 심사평에서 “‘나침반’은 수필작법의 원론에 충실한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중심 제재가 되는 나침반의 속성을 작가가 충분히 체화하고 있었다. 이 작품을 쓰기 위해 나침반이 가지는 일반적 속성과 용도는 물론 나침반의 문학적 상징까지도 진지하게 수집하고 분석하였다. 그런 뒤에 유용한 자료만을 선별하고 이를 남편의 삶에 접목하여 의미화에 성공하였다. 글의 직조력이나, 언어의 세련미에서 다소 흠이 있었으나 제재를 불러내어 해석하고, 다시 적용하는 작법의 진지함과 충실성에 가점을 보태어 당선의 낙점을 찍었다.”라고 적었다.


김순애 작가에게 양해를 얻어 수상작인 나침반 전문을 이곳에 실었다.






◆ 나침반

김순애



여행 가방에서 나온 꾸러미가 제법 묵직해 보였다. 얼마나 정성 들여 포장을 했을까. 겹겹이 싸인 비닐을 풀고 포장지를 벗기는 남편의 손놀림이 조심스럽다. 상기된 낯빛이 새 장난감을 얻은 아이와 같다.

나침반이었다. 하나같이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오래된 것들, 한두 개가 아니었다. 나무와 구리로 만들어진, 갈색 빛이 도는 크고 작은 나침반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둥근 모양, 거북이 모양, 북극성이 박힌 것, 해시계가 달린 것, 심지어 그 하나에 백 년의 달력이 새겨진 것도 있었다. 저것들을 구하려고 얼마나 거리를 누비고 다녔을까. 이국땅 낯선 골목을 떠도는 남편의 형상이 나침반 바늘과 겹쳐졌다.

남편은 4년째 인도에서 혼자 지내고 있다. 처음 인도 발령이 났을 때 그는 많이 망설였다. 결혼 생활의 절반을 주말부부로 지냈는데 그것도 모자라 더 멀리 떨어져 살아야 한다니 갈등이 컸다. 그뿐이 아니었다. 첫 해외 근무여서 언어도 장벽이었고 법인을 새로 세워 이끌어 가는 것도 부담이었다. 사표를 내나 마나,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다 비행기에 올랐다.

낯설고 물 선 곳에서 남편의 홀로서기는 쉽지 않았다. 가끔씩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그의 음성은 많이 흔들렸다. 마음 터놓고 얘기할 데도 없고 기댈 곳 하나 없는 그곳 생활이 참으로 외롭다며 하소연했다. 몇 달 동안 힘썼던 일이 성사 되지 않아 앞이 캄캄하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 계속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불안해했다. 돌아오고 싶다는 말은 차마 하지 않았지만 그의 외로움과 두려움은 고스란히 내게 전해졌다.

남편을 붙들어 준 것은 나침반이었다. 어느 날 지친 마음을 가눌 수 없어 낯선 거리를 서성거렸는데 정처 없이 걷다 보니 골동품 가게 앞이더란다. 온갖 잡동사니 속에서 유독 나침반들이 눈길을 끌었고 홀린 듯 다가가 한참을 들여다보았단다. 저마다 모양은 다르지만 바늘이 가리키는 곳은 모두 같은 방향인 N극과 S극, 먼지를 덮어쓴 채 양팔 벌려 자기 역할을 잊지 않고 있었다. 하나를 집어 흔들어 보니 바늘이 몇 번 왔다 갔다 하다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그 순간 이거다 싶었다고 한다. 헤매지 않고 제갈 길 가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남편은 망설이지 않고 값을 치렀다고.

거실 바닥에 늘어선 나침반들이 숨을 고르고 있다. 어느 길 잃은 나그네의 길잡이가 되었다가 먼 길을 돌아 여기까지 왔나. 들숨과 날숨에서 지난했던 그들의 과거가 새어나온다. 미지의 세계를 향해 전진하는 항해사의 힘찬 고함 소리, 밀림을 탐험하는 대원들의 지친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언뜻 전쟁터에서 낙오된 어린 병사의 초점 잃은 눈빛도 느껴진다. 옛사람들의 절박한 생을 지켜보며 동반자가 되어 준 내력들이 고요한 숨소리에 실려 내게 전해진다. 하나를 손에 올려 본다. 손바닥 위에서 바늘이 이리저리 움직인다. 미미한 자극에도 바르르 떨린다. 마음이 싸하다. 한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며 살아온 남편이 떠오른다. 

나침반과 첫 만남 이후 시간이 날 때마다 남편은 골동품 거리를 기웃거렸다. 사는 게 힘들어서 스스로에게 용기를 주고 싶은 날이면 그곳으로 갔단다. 이를 하얗게 드러내고 웃는 어느 드라비다인의 미소에 이끌려 산 것이 이것이고, 좌판에서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여인의 아련한 눈빛에 쏠려 산 것이 저것이고…. 흠집 많은 나침반 하나하나에 담겨 있을 사연처럼 남편 손에 오게 된 이유도 가지가지였다. 설명하는 그의 얼굴에도 그 드라비다인의 미소와 여인의 눈빛이 머물고 있었다. 열심히 자기 길을 찾아가는 여행자의 모습도 엿보였다.

나침반의 속더께를 닦는 남편의 얼굴이 진지하다. 기름 바른 걸레가 지나갈 때마다 반질거리며 윤이 난다. 몇 번의 걸레질에 광택이 나는 나침반처럼 남편의 인생도 저렇게 빛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세찬 풍파에 시달린 자국들, 나침반의 상처는 정성스러운 손길에도 지워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 불도장처럼 오히려 더 또렷하다.

얼마 전 남편이 있는 인도에 다녀왔다. 그가 근무하는 사무실에 들렀다가 책상 가장자리에 놓여 있는 나침반 하나를 보았다. 요리조리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남편이 말했다.

“지난번에 뭄바이 갔다가 눈에 띄기에 두 개 샀는데 하나는 누굴 줬어. 두어 달 전에 인도에 온 사람이 내게 자문을 구하러 왔을 때 힘내라고 줬지. 어저께도 그 사람이 전화해 앓는 소리를 하더라. 힘들어 못 해먹겠다는 말을 하는데 처음 인도에 왔을 때의 내 모습을 보는 거 같았어. 그래서 몇 마디 도움되는 말을 해 줬더니 그 친구가 나보고 자기 인생의 목표가 되었다나 뭐라나….”

어느새 남편도 누군가의 나침반이 되어 가는 것일까. 목소리에 생기가 묻어났다. 몇 번의 고비를 견뎌낸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여유가 보였다. 그 나름대로 자리를 잡았는지, 말끝에 이제 자기도 인도 사람 다 됐다 한다. 지나가는 인도인이 인사까지 하니 머지않아 아마 시장 선거에 출마해도 될 거라며 껄껄 웃었다.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길도 어느 누군가의 나침반으로 개척해 놓은 길일 것이다. 그 길을 걸으며 우리는 꿈을 꾸고 희망을 노래한다. 가끔은 고갯길을 넘다 지쳐 목 놓아 울 것이고, 지나온 길에 대한 회한에 잠겨 뒤돌아보기도 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우리가 걸어온 길 또한 누군가의 나침반이 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좁은 길이든 넓은 길이든 그 꿈길을 발밤발밤 밟으며 걸어오리라.

거실장 안에 나침반들이 쉬고 있다. 비록 상처투성이지만 그들에게서 겸손한 승리자의 모습을 본다. 주인과 함께 방황하고 번민하다 마침내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도 목청 높여 외치지 않는 유순한 조력자들, 어깨 낮춘 그들에겐 오로지 사람만을 섬긴 순결함이 스며 있다. 깊은 묵상에 잠긴 나침반을 깨운다. 이제는 유물이 된 그들을 어루만진다. 몸에 난 흠집들이 훈장처럼 반짝인다.

그의 나침반 바늘들이 모두 한 곳을 향하고 있다. 집이 있고 가족이 있는 바로 이곳이다. 무사히 사명을 다 하고 또 다른 나침반 꾸러미와 함께 입성할 그의 모습을 그려본다.






- 김순애 작가 당선 소감문과 심사평 전문이 실려있는 매일신문 홈페이지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51&yy=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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