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은행) 뭄바이 지점장님의 인도 잡학 상식편 > 자유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커뮤니티


자유게시판

(신한은행) 뭄바이 지점장님의 인도 잡학 상식편

페이지 정보

작성자 아이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3-01-16 20:50 조회32,354회 댓글0건

본문

안녕하세요. 신한은행 뭄바이지점장 입니다.
 <?xml:namespace prefix = o />

환절기에 잘 지내고 계신지요 ???

 

인도생활을 만 3 넘긴 시점에서 몸속의 기가 빠져서인지 그리 무리하였다 생각치 않는데

몸살.감기가 제대로 왔네요.

 

정말 인도에서 제일 가기 싫은 병원을 어쩔 수 없이 가게 되고, 거기서 또 인도의 싫은 면을

한없이 보면서 속으로 끓어오르는 성질 땜시 病 만 더 달고 왔습니다.

 

있는 동안 만이라도 "인도를 사랑하자"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말입니다.

 

몸 관리 잘하셔서 정말 아프지 마세요, 인도 병원에 가면 속 뒤집어 집니다. 정말루...

 

 

1 3주차, 인도 경제기사 & 잡학 상식을 송부합니다.

 

인도 잡학상식은 제가 그 동안 모은 자료를 참조해서 작성한 내용이며,

인도경제기사는 저희 은행 이한별차장이 작성한 것을 트랜스퍼합니다.

 

인도생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

 

 

 인도 잡학 상식

 

 

● 하지 알리 (Haji Ali)

 
 
1 짜가 기린의 탄생
 
1414년 명나라 수도 남경.
 
영락제 궁궐에 한바탕 난리가 났다.
어진 임금, 성군이 나오면 나타난다는 전설의 동물이 궁궐로 걸어 들어온 것이다.
사람은 놀라고 온 나라가 떠들썩 했다.
 
바로 요넘입니다. 현재 우리가 동물원에서 자주 보는..
 
기린 (giraffe, 麒麟)

 
고대 중국에서는 용, 봉황, 거북, 기린을 ‘4령’이라 하여 신령스런 동물이자 상서로운 것의 상징으로
여겼습니다. 거북 말고 다른 셋은 전설로만 존재하는 것들이죠.
 
기린에 대한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전한 말기 경방(京房)이 쓴 역전(易傳)에 따르면,
기린은 이마에 뿔 하나가 돋아 있고, 사슴의 몸에 꼬리는 소와 같으며, 말과 같은 발굽과 갈기를 가지고
있는 오색의 동물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넘이죠.
 
여러분 보시기에 닮았나요 ? 뭔가 차이가 있죠.
그런데, 어떻게 아프리카에 있는 저 녀석이 전설 속의 상서러운 기린이란 이름으로 태어날까요 ?
그러해야 할 무슨 꿍꿍이 속이 있었나 봅니다.
 
우리나라에서 기린이라 부르는 이 녀석을 오늘날 중국에서는 기린이라 하지 않고 장경록 (長頸鹿),
, 목이 긴 사슴이라 부른답니다.
 
 
2 영락제
 
1402년 여름.
 
연왕 주체가 인마를 이끌고 남경 성문에 다다르니 이미 보따리를 싸 빠져 나가려는 성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응천부를 지키던 대장 이경륭(李景隆)이 성문을 열고 투항하니
연왕이 군사를 이끌고 궁궐 안으로 들어갔는데 그 때 궁궐에 화재가 일어났다.
 
연왕은 급히 병사들에게 명해 불을 껐지만 이미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불에 타죽은 뒤였다.
남경에 입성한 연왕은 사흘 동안 궁궐 안을 이 잡듯 뒤졌으나, 조카이자 2대 황제인 건문제는
이미 종적을 알 수 없었다. 연왕이 도성으로 들어올 때 건문제가 궁궐에 불을 지르고 황후와 함께
불 속으로 뛰어 들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끝내 건문제의 시체는 찾지 못했다.
 
그 후, 연왕 주체가 황제로 즉위하니 그가 바로 현재의 중국 수도인 북경으로 수도를 옮기고
자금성을 축조한 명나라 3대 황제 영락제 입니다.
 

 
영락제(1360~1424, 재위 1402~1424)는 인간 백정이란 별명의 그의 아비 명태조 주원장 만큼이나
잔인한 인물이였습니다.
 
대학자 방효유(方孝孺)가 황제의 취임사 쓰기를 거부하고 오히려 모욕까지 한 일이 벌어지자
영락제는 크게 노하여 “莫說九族 十族何妨 (구족에 머물지 말고 십족까지 나아가라)”고 칙령을
내립니다.
십족이란 혈족인 구족이외 제자, 친구, 선후배 등 방효유와 친분관계가 있다 싶은 사람 모두를
연루시키라는 말입니다. 처형장으로 보내진 사람만 847명이였다고 합니다.
 
아주 오래 전 어떤 사극에서, 아마 칠삭동이 한명회 였던가 ? 인수대비로 분한 최시라가 서릿발
넘치는 표정으로 아랫 것들에게 이런 능지처참 할 이란 대사를 하곤 하였습니다.
우리가 사극에서 자주 접하는 바로 그 능지처참 (陵遲處斬) 이란 악형도 이 시기에 일반화되었다고
합니다.
 
'능지(.凌遲)' 란 원래 산이나 구릉의 완만한 경사를 뜻하는데 형벌에서는 가능한 느린 속도로
사람을 사형에 처한다는 걸 말합니다.
잘드는 칼로 마치 생선회를 뜨는 것처럼 신체를 수백~수천조각으로 얇게 발라내 죽이는 형벌로
그 고통과 공포가 최고조에 달하도록 금방 죽지 않도록 신경을 건드리지 않고 살을 발라내는데
시행중 죄인이 죽으면 시행자가 처벌을 당할 정도여서 최대한 죽음을 늦추면서 고통을 가하기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합니다.
그 당시 기록에는 집도(살베기) 횟수가 3천회가 넘었다는 기록도 있다니 인간으로서 어떻게 이리
잔인할 수 있는건지.
 
야사에 의하면 이 영락제의 어머니가 고려 공녀 출신 李氏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명나라 주원장의 아들 26명이 번왕으로 세워졌는데, 그가 고려 공비출신 서출이라명나라의
변두리 중 가장 힘든 곳인 북평 (현 북경)의 번왕으로 세워졌다고 합니다.
 
유목민족에게 있어 말(), 그리고 자신들의 대를 이어줄 여자는 필수불가결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유목민족이 세운 원나라 시절에는 주변국들로부터 말과 여자가 엄청 차출되어 갑니다.
이들중 상당수의 공녀가 고려말 원나라 황실의 후궁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기씨 출신 공녀가 원나라
황제의 황후가 된 기점을 시작으로 약 80년간 元末明初 대 중국황실 내에서 막강한 파워를 행사합니다
 
여기서 아주 특별난 집안이 등장합니다.
 
지순창군사 한영정 ㅡ 4女 한규란 (명 공비, 강혜장숙여비) : 영락제 후궁
                  5女 한계란 (명 공비, 공신태비) : 선덕제 후궁
                  ㅡ 양절공 한확 ㅡ 6女 인수대비 (소혜왕) + 덕종 => 성종
 
3대 황제 영락제 가장 아낀 후궁이 그 유명한 한명회의 본관인 청주한씨 양절공 한확의 누이
한규란으로 인수대비로 잘 알려진 소혜왕후의 고모 입니다.
영락제의 손자 이자 5대 황제인 선덕제 역시 한확의 누이 한계란을 후궁으로 맞이하니 한확은
명나라 3대 황제와 5대 황제를 매형으로, 딸 역시 훗날 인수대비가 되니 조선초 그 파워는 따를 자가
없었다고 합니다.
 
한확은 후에 수양대군을 도와 계유정란을 일으켜 수양의 조카인 단종을 폐위시키고 수양이 세조로
등극하는데 최고의 수훈을 세우게 되는데, 그의 매형 영락제가 정란지변을 일으켜 조카인 2대황제
건문제로 부터 황위를 찬탈한 것을 한확은 벤치마킹 했나 봅니다.
 
 
3 남해원정
 
역사에 보면, 한 나라와 또 한 나라 간 파워의 균형이 깨지게 되면 군사력이 약한 국가는 강한 나라에게
상당한 착취를 당하게 됩니다.
그 중 하나가 조공(朝貢)이란 형태로 이루워지는데, 조공이란 종속국이 종주국에 때를 맞추어 예물을
바치는 행위 라고 사전에 기술되어 있듯이 당하는 입장에서는 결코 좋은 일이 아니죠.
그런데 元末明初 시대에는 그 조공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나 봅니다.
 
태종실록에 의하면 조선과 명나라 사이에 조공 횟수를 놓고 신경전이 벌어졌을 뿐만 아니라
그 때문에 국교가 일시 중단되는 사태도 발생했다. 명나라는 ‘3년에 1번만 해라’ 고 한데 대해
조선은 ‘1년에 3번은 해야겠다’고 맞섰다 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당시, ‘대명회전’이란 기록에도 오키나와는 2 1, 베트남과·태국은 3 1, 일본은 10 1사였다
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조공을 하게되면 받는 쪽에서는 반대급부로 회사(回賜)라는 것을 하게되는데, 당시는 받는 것 보다
주는 것이 많았다고 합니다. 또 신기술 물자가 부족한 조선의 입장에서는 왕실과 귀족의 품위유지를
위하여 조공을 통한 욕구 해결이 절실했던 모양입니다.
 
아무튼 이 조공문제는 영락제와 사이가 좋은 이방원이 1400년 태종으로 즉위 후 해결되었다고
합니다.
1 3사 조공 제도 동지에 보내는 동지사(冬至使). 새해맞이 정조사(正朝使), 황제와 황후 생일에
보내는 성절사(聖節使) 가 이후 조선말까지 이어집니다.
 
1403년 명나라 영락제 즉위를 기념하여 조공 사절단이 명으로 갑니다.
그리고 이 사절단 편에 한장의 지도가 보내집니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
일명 강리도 라고 합니다.
 

 
현재 일본 류코쿠(龍谷)대학에 보관되어 있는 이 지도는,
조선 초 1402 (태종 2)에 좌정승 김사형과 우정승 이무가 중국에서 들여온 이택민의 ‘성교광피도
(聲敎廣被圖)’와 천태승 청준의 ‘혼일강리도(混一疆理圖)’를 참조하여 성리학자 권근과 검상 이회가
(중국이름 취안진, 리후이) 조선과 일본 지도를 추가해 새로 편집한 세로 148, 가로 164㎝짜리
대형 세계지도입니다.
 
강리도가 세계사적으로 위대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지도에 아프리카 남단이 나오는 것으로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세계지도이기 때문이랍니다.
 
이 강리도를 받아 본 영락제는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황위를 찬탈했으나, 아직 입지가 확고하지 않은 상황에서 조카인 2대황제 건문제가 생존해 남해에
살고 있다는 소문이 돕니다.
거기다 원나라는 비록 명에 밀려 북방으로 쫓겨나긴 했어도 실크로드를 장악하고 있어 명나라가
서방으로의 진출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합니다.
 
그리하여, 영락제는 중대 결심을 하게 됩니다.
 
세계사에서 영원히 찾아볼 수 없는 대장정
이름하여 남해원정, 후에 下西陽 이라 불리우는 대규모 원정을 계획합니다.
생존해 있을지도 모를 건문제도 찾을 겸, 막힌 실크로드 대신 서양과 교역도 할 겸.
 
1405 6, 소주에서 대장정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사실 서양에서 대단하다고 여기는 1492 8 3, 250t 3, 승무원 88명을 이끌고
두달 항해 끝에 10 12, 아메리카를 발견한 콜럼버스 원정 이나, 그 후 1497 7 8, 120t
4척의 선대(船隊) 175명의 선원으로 2년간 42 km를 항해하여 인도항로를 개척한 바스코 다
가마의 원정은 이 남해원정에 비하면 그 출발이나 규모에 있어서 쨉도 되질 않습니다.
 
명사(明史)에 의하면 1차 남해원정대의 주력선 선박 길이는 44()이요, 선폭은 18장에 이르는
대형 함선 62척에 총 승무원은 2 7,800명이 승선했다 라고 기술합니다.
 
이를 미터(m)로 환산하면, 길이는 약 137m, 폭은 약 56m
현재의 축구장 (FIFA에서 권장하는 운동장 규격 : 105m x 68 m) 보다 큰 크고 ,
콜럼버스의 캐러벨선 보다 30, 바스코 다 가마의 배들을 놓으면 다섯 척이 나란히 늘어서도 모자랄 정도의 규모라고 합니다. (현재의 배로 환산하면 약 3t급 정도라고 합니다)
 
승선인원도 콜럼버스 88, 바스코 다 가마 175, ㅋㅋ 이건 무슨 동네 잔치도 아니고,
남해원정대는 한번 나갈 때 기본 나가리가 대소형 함선 200척에 승선인원만 얼추 3만명 선
이였습니다.
 
 

이 원정대의 위용은 바다가 아닌 육지에서 관찰한 기록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스리랑카 최남단의 돈드라 곶.
대양을 향해 길게 뻗어 있는 바위투성이 곶에서 시야에 잡힌 명나라 선단의 첫 모습은 마치 수평선에
드리워진 거대한 그림자 같다.
이 그림자는 점차 떠오르면서 열대의 태양에 선홍빛으로 물든 커다란 구름으로 모습을 바꾼다.
바람을 맞아 팽팽히 부푼 구름 같은 돛들은 계속 접근해 오며 이글대는 선홍빛 품안에서
거대한 도시를 드러낸다. 이 세상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수상도시'를 말이다.
관리와 병사들, 농부들이 그들 눈 밑에 펼쳐진 이 광경에 너무 놀라 넋을 잃는다. 굉장한 위용으로
인도양을 수 킬로미터에 걸쳐 덮고있는 이 도시는 바로 명나라 남해원정 함대였다.
 
남해원정은 1405 7 11일 시작해 1407년에 끝난 제1차 항해를 시작으로
1407년의 2,
1409년의 3,
1413년의 4,
1416년의 5,
1421년의 6,
그리고, 1430년에 시작해 1433년에 끝난 7차까지 모두 합쳐
16여년에 걸쳐 총 185,000 km의 사상 초유의 대규모 항해를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1414년 남경.
 
중국 명나라 조정에 희귀한 동물이 당도한다.
4차 원정을 마친 원정대가 가져다 바친 것이었다.
 
 

'조공기린'으로 알려진 이 동물은 말린디 (Malindi, 현 케냐 항구도시) 국왕이 새로 즉위한 벵골국의
술탄에게 선물로 준 것인데, 벵골국에서 다시 중국 황제에게 선물한 것이다.
 
생전 접하지 못했던 동물을 보게된 신료들은 저마다 무릎을 치며 이것이 상상의 동물인 기린이라고
생각했다. 목과 다리가 길긴 하지만 말과 사슴을 뒤섞어 놓은 듯한 형상에 몸에 반점이 있는 모습이
영락없이 기린과 닮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머리에 뿔까지 달렸으니 우연치고는 너무 좋은
기회였으리라.
 
기린이란 이미지가 내포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기린 = 성군(聖君)이 나타날 징조 라는
점이었다. 명나라 조정을 반석에 올려놓기는 했지만 왕위를 찬탈한 무자비한 임금으로도 유명한
영락제에게 겁을 먹지 않은 신료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이참에 ‘립 서비스’ 한번 확실히 해서
왕의 횡포를 가라앉힐 필요 또한 있었다.
 
영락제는 신료들의 과장된 아첨을 꿰뚫어보고 자신은 현인이 아니며 이 동물도 기린이 아니라고
말했으나, 조카의 왕위 찬탈에 대한 정당성과 그에 따른 정통성에 문제가 있는 영락제 역시 성군이
나타나면 나온다는 이 기린이라는 좋은 기회를 버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 당시 야사에도 궁궐 속에서 거닐고 있는 기린을 본 많은 백성들이 폭군으로 알고 있던 영락제가
전설 속의 성물이 나올 정도로 천하의 성군이였다고 소문이 퍼져 나가 정치적 안정을 이루었다 라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렇게 해서 서양인들이 지라프(giraffe)라 명명한 이 녀석은 포유류 중에서 가장 명예로운 전설속의
동물로 탄생하게 됩니다.
 
정치, 정략적이면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
다만, 후대가 그에 대한 옮고 그름을 판단할 따름이겠죠.
 
 
4 정화
 
“일찍이 크고 작은 30여 나라를 찾아, 십만 리의 바닷길을 다녔네.
망망대해에서 산처럼 큰 파도가 하늘을 엎을 듯이 몰아쳤다네.
보이느니 안개 자욱하게 덮인 바다 틈틈이 낯선 이국의 풍경이라네.
돛을 높이 올려 밤낮으로 바다를 달리니, 파도가 뱃전을 때리고, 그 파도를 우리 배가 뛰어넘었네.
- 천비지신령응기(天妃之神靈應記) -
 
중국 왕조에 있어 3대 환관하면,
사기를 지은 사마천, 종이를 발명한 채륜, 그리고 남해원정대의 총사령관으로서 원정대를 이끌며
16년간 장장 18여만 km를 항해한 삼보태감 정화(鄭和)를 듭니다.
 
 

이 정화에 대한 현대 서양인의 평가도 대단합니다.
 
미국의 학술지 <라이프>가 새로운 세기를 맞으면서 학자들의 설문조사를 통해 지난 1천년 동안
'역사를 만든' 위인, '사건 창조적 인간' 100명을 순위를 매겨 뽑았는데, 뽑힌 동양인 11명 가운데
정화가 기라성 같은 인물, 간디, 징기스칸, 마오쩌둥 등을 제치고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 KOREAN ASSOCIATION OF PUNE IN INIDA All rights reserved. | 담당자 : punekoreanz@gmail.com 상단으로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